중국의 ‘사드 보복’에는 ‘관시(關係)’도 통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정·재계 고위인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국내 주요 대기업까지 보복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과 현대차, SK 등 대기업들은 이번 사드 건으로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쏟아부었던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多个朋友多条路(친구가 많으면 해결 방법도 많아진다)’, 중국 특유의 관시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중국의 한 격언이다. 실제 중국 사업을 진행한 재계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중국인 친구(관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재계 총수들은 중국 정ㆍ재계 인사들과 끈끈한 인맥을 형성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정몽구 현대차 회장부터 정의선 부회장까지 2대에 걸쳐 관시경영에 공을 들였다.
정 회장은 중국에 현대ㆍ기아차공장이 들어설 때마다 중국을 직접 찾으며 중국 고위인사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특히 2008년 4월 현대차 베이징 2공장 준공식 참석 직전에는 당시 중국 지도부 내 서열 4위였던 자칭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정 부회장도 중국 출장에 나설 때마다 중국 차기 지도자들을 만나며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거론되는 쑨정차이 충칭시 서기와 천민얼 구이저우성 서기, 후춘화 광둥성 서기를 한꺼번에 만나 화제가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대표적인 ‘친중’ 인사다. 2005년 시진핑 국가주석과 처음 만난 최 회장은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 회장은 진리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총재, 하오핑 중국 교육부 부부장(차관급), 왕위푸 시노펙 동사장(회장) 등과 중국 정ㆍ재계 주요 인사 들과 친분을 갖고 있다.
삼성도 시진핑 주석과 인연이 있다. 2007년 당시 상하이(上海) 당서기를 맡고 있던 시 주석이 쑤저우(蘇州) 삼성반도체 공장을 방문했을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났던 것. 이후 시 주석과 이 부회장은 2010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재회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이들 기업들은 인간관계 형성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 나서며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왔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잡아야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전략에서다.
오랜 기간 중국과 신뢰를 쌓으며 만만치 않은 규모의 투자도 진행해왔던 만큼 기업들은 정치적 문제로 인해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현재 사드 사태의 주 타깃이 되고 있는 롯데의 경우만 해도 지난 23년 동안 약 10조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사태는 이 같은 예상을 벗어나고 있어 기업들의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진행 중인 사업 중 일부분은 현재 중단된 상태”라면서 “중국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응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