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화하면서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했던 부적격 사외이사 선임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데다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 자율경영체제를 선언하면서 개별 상장사 이사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한미약품, LG디스플레이, 삼광글라스 등의 주총을 앞두고 사외이사 선임 및 상근감사 선임 등의 안건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우선 오는 16일로 예정된 LG디스플레이 주총에 상정된 권 모 한양대 교수 사외이사 선임안에 대해 “독립성 우려가 있다”며 반대를 권고했다. 연구소는 “LG디스플레이는 사외이사 후보자와 2013년 3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3년 9개월간 기술 자문 및 지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며 “후보자가 사외이사로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독립성 문제가 제기되자, LG디스플레이는 이같은 권고를 받아들여 사외이사 후보자를 기존의 권 교수에서 장진 경희대학교 정보디스플레이학과 석학교수로 교체했다.
권 교수처럼 장기간 계약관계에 있던 후보자가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은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반한다는 것이 연구소의 판단이다.
이와 함께 10일 열릴 예정인 삼광글라스 주총 안건 중 강모 도로명주소연구원 이사장의 상근감사 선임건, 안모 이테크건설 대표이사의 비상근감사 선임건에도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강 이사장의 경우 과거 국민은행 사외이사 재직 시 징계처분을 받은 이력이 있다. 연구소는 “당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국민은행 사외이사 전원이 주의 처분을 받은 데 따른 것으로 충실한 감사로서의 임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사외이사는 회사나 경영진과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들로 채워졌던 게 현실이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48개 그룹 소속 248개 상장회사 사외이사 785명 가운데 189명이 독립성이 의심되는 사례였다. 전체의 24.08%에 해당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장사 사외이사들은 재벌 총수와 경영진을 위해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이는 사외이사의 반대 안건 수에서 드러난다. 공정위가 지난해 26개 대기업 소속 165개 상장사의 2016년 3월 정기주총과 최근 2년간의 이사회 안건 3997건을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가 반대해 원안대로 통과하지 않은 안건은 16건에 불과했으며 이 중 부결된 안건은 2건뿐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기업이 휘말리면서 주요 경영적 판단에 대한 이사회의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특히 정치권에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등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여 총수 일가와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견제하도록 하기 위한 상법 개정을 서두르면서 기관투자자들 역시 이사회 구성에 대해 적극적인 의결권을 내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로 인해 기관투자자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며 “기관투자자는 기업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현실적으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여전히 외국계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