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싱글 레이디 및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 미국 센서스에서는 여성의 ‘결혼 지위’를 다음 4가지로 나눈다.
(1)never married(한 번도 결혼한 적 없는 여성). (2)married(재혼이든 삼혼이든 현재 법적 배우자가 있는 여성). (3)singlehood(이혼, 별거, 사별 등을 불문하고 현재 법적 배우자가 없는 여성). (4)de facto(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
레베카 트라이스터의 책에서는 1번과 3번 여성을 모두 아우른다. 참고로 한국 센서스에서는 (1)미혼(未婚):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 (2)기혼(旣婚): 이미 결혼한 여성 (3)이혼(離婚): 배우자와 갈라선 여성 (4)사별(死別): 배우자가 사망한 여성 (5)기타(동거 혹은 별거 중인 여성)로 범주화하고 있다. 덕분에 한국에선 이혼 후 재혼한 여성이나 재혼 후 다시 혼자된 여성을 어디에 동그라미를 쳐야 할지 애매해지는 범주상의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결혼을 못 했든 안 했든 혼자 사는 여성들은 동서고금 역사 속에서 늘 존재해왔다. 특별히 배우자 없이도 혼자 살 수 있었던 여성들 다수는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귀족층 여성이었다는 기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심지어 1553년부터 1603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던 엘리자베스 튜더(Elizabeth Tudor) 여왕은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하는데, 죽는 순간까지 수차례에 걸친 진지한 청혼을 거절했다고 한다. “여왕의 지위를 누리며 결혼하기보다는 거지로 살아도 좋으니 독신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고백과 함께.
그러고 보면 행복한 결혼의 패러독스처럼 만족스러운 싱글의 패러독스도 있는 것 같다. 행복한 결혼의 패러독스란,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는 만족하지만 정작 결혼생활에선 불만 가득한 여성들의 딜레마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싱글의 경우는 그다지 불행할 것도 나쁠 것도 없는데 다만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시선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건 아닐는지.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처녀’에 대해서는 남자에게 선택되지 못한 여자, 저주받은 여자, 불행하고 외로운 여자, 아니면 남자를 증오하는 여자, 어쩌면 레즈비언일 것이란 부정적 인식이 뿌리 깊게 전해져온 것이 사실이다. ‘노처녀 히스테리’란 표현만 해도 여자에게 어떤 문제나 결함이 있다면 그건 온전히 결혼을 못 했기 때문이란 비난이 자연스레 따라붙은 것 아니던가.
한데 드디어 반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미국 역사 속에서 ‘싱글 레이디’들은 고정관념이나 통념과는 달리, 여성 참정권 운동 및 흑인 민권운동을 거쳐 여성해방운동 및 낙태 찬성운동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펼쳐질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참여하여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뤄냈음이 사료를 통해 입증되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에도 인종을 불문하고 싱글 여성들의 탄탄한 지지가 큰 기여를 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나아가 1990년을 기점으로 결혼제도 밖에 있는 여성 비율이 결혼제도에 편입된 여성 숫자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기혼여성 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서구에선 결혼과 출산이 여성의 삶에 필수이자 정상(normal)이란 인식이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이 평균 초혼 연령을 앞지르기 시작했음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네 근현대사 속에서도 독립운동 및 한국전쟁을 거쳐 노동운동 및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계기마다 ‘독신 여성’들의 활약상을 찾아내는 건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비혼 여성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결혼 및 출산이 계속 지연되고 있음은 서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바, 그 속에 담긴 여러 겹의 의미를 새롭고 신선한 시각에서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하리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