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5일(현지시간) 미국과 멕시코 접경 지역 장벽 건설과 이민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행정명령 서명을 기점으로 최대 1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 추방과 테러 위험국 출신 무슬림의 입국제한 조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조치에 가장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은 국경선을 맞댄 멕시코다. 트럼프는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 멕시코와의 국경을 따라 접경 지역에 거대한 장벽을 설치해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멕시코가 맞닿은 국경은 약 3145km. 이중 절반 정도는 이미 나무 울타리와 철조망, 감시카메라 등으로 장벽이 만들어져 있어 실질 장벽을 설치하는 구간은 1640km라는 것이 트럼프 측의 설명이다. 트럼프 정부는 일단 오는 4월께 장벽 건설 비용 선(先) 집행에 관한 법안이 미 의회에서 통과되면 곧바로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법안 통과엔 큰 문제가 없지만 ‘장벽 무용론’을 주장하는 야당인 민주당의 반발 강도에 따라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은 있다.
현재 멕시코 장벽은 언제, 어떤 식으로 만들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장벽 건설을 수개월 내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행 법률에 따라 연방정부 비용으로 건설한 후 멕시코에 건설비용 상환 청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의 공약대로라면 멕시코가 장벽 건설 비용으로 추산되는 120억~380억 달러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쇄국 정책이 탄력을 받으면서 ‘이민자의 나라’, ‘포용의 나라’의 상징이었던 미국의 보편적 가치 다원주의도 흔들리게 됐다. 미국은 이민자가 건설한 나라다.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하나의 대륙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멜팅 팟’이라고 이름도 얻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트럼프의 이민 규제 강화로 이런 다양성도 위축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 추방을 넘어 자국민 일자리 확보를 이유로 취업 이민 등 합법이민 문턱을 높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인종의 다양성’의 상징이었던 미국 첨단기술 보고(寶庫) 실리콘밸리도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실리콘밸리는 전문직 취업 비자(H-1B)를 버팀목 삼아 성장해왔다. 이 비자를 통해 해외의 우수한 인력을 채용해 이들을 미국에 정착시켰다. H-1B 취업 비자 쿼터는 현 8만 5000개. 그러나 지난해 수요는 쿼터의 3배를 넘어섰다. 하지만 합법이민 제도인 H-1B 비자 등 취업비자의 요건이 강화되면 실리콘밸리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