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한국 제약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빠른 시일내 선진 제약클럽에 진입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6년 반 회장 임무를 마치고 한국제약협회를 떠나는 이경호 회장이 제약산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약협회는 약 200개의 제약사가 가입된 국내 대표 제약관련 단체다. 이경호 회장은 내년 2월 임기 만료를 1년 앞두고 사퇴를 선언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7월 취임한 이후 2012년 재선임, 2014년 3연임에 이어 지난해 4연임이 결정되며 72년 제약협회 역사상 4번째 장수 회장으로 기록됐다. 지난 1945년 설립된 제약협회는 7대 전규방 회장이 최장 기간(1957년 10월~1967년 8월) 역임했고 이경호 회장을 포함해 18대 김정수 회장(8년 8개월), 8대 강중희 회장(8년 5개월) 등 4명만이 5년 이상 회장을 지냈다.
이 회장은 “제약협회장을 지내는 동안 국내 제약산업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실 이 회장이 취임할 당시만 해도 제약업계 전반에 걸쳐 불법 리베이트 관행이 횡행했고 정부로부터는 “신약개발에 소홀한 채 불법적인 영업활동으로 이익만을 챙긴다”는 불신을 받았다. 내수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해외 시장에 갈 길이 멀었다.
2010년 이 회장이 선임되기 직전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이 제약협회장을 역임했는데 어 회장은 정부의 연이은 제약산업 규제 움직임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자진 사퇴했다.
당시 제약업계는 병원이 약을 싸게 구매하면 인센티브를 받는 ‘시장형실거래가’라는 새로운 약가제도에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당시 제약사에 몸 담고 있는 인사가 제약협회장을 맡으면 정부를 상대로 한 대외 로비력에 한계가 노출했다는 지적이 우세했다.
이 때 제약협회는 ‘제약사 출신 회장-외부 인사 출신 부회장’체제에서 ‘상근회장제-이사장’ 체제로 정관을 변경한 이후 이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위기의 제약업계에 투입된 구원투수였던 셈이다. 이 회장은 지난 6년 6개월 동안 혼란스러운 업계 분위기를 추스리고, 국내 제약산업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장은 “최근 국내제약사들의 수출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연구개발비도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확대됐다”면서 “무엇보다 제약사들이 윤리경영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희망적이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한미약품을 비롯해 많은 제약사들이 해외시장 성과를 냈고, 정부도 허가·약가제도 개편, 각종 세제혜택 등 지원을 확대하며 제약산업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을 이 회장을 높게 평가했다.
이경호 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의 전망도 긍정적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신약개발과 해외시장 진출 능력과 함께 윤리경영 기반을 갖춰야만 선진제약국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제약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선진 제약국가로 가고 있고, 머지않은 시일내에 선진 제약국가로 진입할 것으로 믿는다”고 전망했다.
이 회장은 “사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건강주권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의약품 수요를 충족시키는 국가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자체적으로 의약품 공급 능력을 갖췄고 충분히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했다.
다만 제약사들의 윤리경영이 아직 확고하게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 회장은 아쉬워했다. 과거에 비해 국내 의약품 영업현장에서 불법 리베이트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제약사들의 과열경쟁으로 리베이트 연루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실정이다.
이 회장은 “많은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위해 구체적은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면서도 “100% 투명해지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만 국민들로부터 불법 리베이트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작업을 완결짓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 회장은 재임 기간에 리베이트 의심 업체 무기명 설문 등과 같은 강력한 리베이트 근절 의지를 피력했다.
이 회장은 “우리 제약산업이 가야할 방향은 신약개발 뿐이다. 신약개발만 국제적 확산력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필수로 달성해야 할 우선 과제다”고 제약사들에 당부했다.
이경호 회장은 대통령비서실 보건복지비서관, 보건복지부 차관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으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 인제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