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유 있는 침묵과 사라진 정의

입력 2016-12-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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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 정책사회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공백’ 동안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처음으로 불거진 지난 7일, 머리 손질을 담당한 것으로 지목된 정모 원장의 서울 청담동 미용실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출입이 통제된 미용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기자 20~30명이 추위에 떨면서 건물 주변에 진을 치고 정 원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저녁 8시쯤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난 정 원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황급히 차로 향했다. 삽시간에 정 원장을 우르르 둘러싸고 “한 말씀만 부탁드려요!”를 외치는 기자들과, 어떻게든 정 원장을 무사 귀가시키기 위해 “비키세요!”를 외치며 길을 확보하는 미용실 직원들이 뒤엉키며 일대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기자들과 미용실 직원들의 드잡이 끝에 정 원장은 무사히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그 순간 정 원장과 미용실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 원장이 입을 열지 않은 여러 이유 중 하나에는 자신을 ‘청와대 미용사’로 발탁해 준 대통령에게 보은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직원들 역시 그들의 월급봉투를 쥐고 있는 원장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판단이 앞섰을 것이다. ‘사회 정의보다 내가 모시는 VIP를 지키는 일이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욱 중요하다’는 그릇된 판단이 낳은 슬픈 풍경인 셈이다.

참담한 국정농단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현재도 정 원장과 그의 직원들처럼 여전히 VIP를 비호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또 그들 자신이 권력을 업고 부당하게 얻은 이권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국회의원,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럴수록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릭 펠턴은 “정치에서 충성은 과대평가된 덕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악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즘 우리 사회야말로 VIP에 대한 이유 있는 충성이 악덕이 돼 정의를 회복할 수 없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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