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거취 문제를 놓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국회의 탄핵소추를 사실상 수용하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끝까지 받아보겠다는 입장이다. 탄핵 심판 과정 중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이 버티기로 입장을 정함에 따라 내년 6월까지 국정공백 사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7일 4차 담화 카드를 접은 청와대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탄핵 심판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미 청와대는 국회 탄핵안 통과와 박 대통령의 직무정지 상태를 전제로 하고 업무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특검 수사와 헌재의 심리를 위한 변호인단 구성으로도 대응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영하 변호사를 포함해 현재 4명 정도가 법률 검토를 하면서 탄핵 이후 상황을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와 회동을 갖고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국회의 탄핵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지리한 법리 다툼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 탄핵 가결 이후 헌재의 탄핵심판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자진 사퇴’는 없음을 시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탄핵안이 가결돼 탄핵 절차에 들어가면 헌재 결정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며 새누리당의 당론인 ‘4월 퇴진’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문제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더라도 정국 혼란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의 직무는 즉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은 끝까지 자신이 임명한 내각을 통해 여전히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탄핵안 가결 이후 한 달 넘게 지연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명 절차에 속도가 붙을 수 있지만 정치권이 경제사령탑을 세우는 일에 힘을 실어줄지는 미지수다. 황 총리의 권한 대행 범위를 놓고 여야가 다시 갈등을 빚기까지 한다면 시급한 국정은 또 후순위로 밀릴 수도 있다.
더욱이 탄핵소추안에는 여러 법리적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내년 6월 초에나 헌재 심판이 내려질 수 있어 신임을 잃은 황 총리 대행 체제는 더욱 장기화할 수 있다. 내년 1월 말 헌재 소장, 3월 14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한다는 점도 변수다. 이들에 대한 후임 인선이 늦어져 공석으로 남은 상태에서 재판관 중 2명만이라도 탄핵에 반대한다면 헌재의 인용 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