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발효되기도 전에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중국이 그 공백을 노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TPP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중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새 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TPP에는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참가했으며 중국을 사실상 겨냥한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이들 회원국은 올해 초 TPP 협상을 타결해 각국 의회 비준 절차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TPP의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됐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공화당의 미치 맥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의회에서 연내 TPP 심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새롭게 출범하는 트럼프 정권 하에서 다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내내 미국에 불리한 TPP에서 탈퇴할 것임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이에 중국은 자국 주도 하에 아태 지역에서 TPP를 대신할 새 다자간 무역협정을 맺을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리바오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달 중순 시진핑 국가주석이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새 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중국 관리들은 APEC에서 새 무역협정을 제안할 것이라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표시해 왔다. 이는 TPP를 우선순위에 둔 미국 정부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미국 관리들도 힘이 빠지게 됐다.
리 부부장은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고 아태 지역은 성장모멘텀 약화 현상에 직면했다”며 “중국은 산업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자유무역지대 구축을 위한 초기 모멘텀을 유지하고자 새로운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미 버락 오바마 정부도 최근 수개월간 TPP가 실패로 끝나면 중국이 자체 무역협정을 추진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해 왔다고 FT는 전했다. 마이크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우리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며 “TPP가 성사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제 유일하게 사이드라인에 서서 다른 나라들이 새 무역협정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총 16개국이 참가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FT는 전망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이날 중의원에서 TPP 협상안을 비준 처리했다. 그러나 미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TPP는 아예 발효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는 TPP를 자국 경제 회생의 핵심으로 삼았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도 치명적이다. 이에 아베 정부는 트럼프 당선인의 마음을 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 뉴욕을 방문해 17일 트럼프와 양자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