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대통령의 퍼스낼리티

입력 2016-10-3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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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교수

1991년 초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하던 시기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 미국 TV에선 연일 심리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이 출연해 국내외 여론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결정한 대통령의 심리 분석에 열을 올렸다.

마침내 최종적으로 전쟁을 명하던 순간의 대통령 조지 부시는 어떤 심리상태에 있었을까를 주요 화두로, 심리학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은 부시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각도로 분석해갔다.(불행히도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부시 특유의 퍼스낼리티 형성에 기여했던 성장기의 일화에 대한 심층적 탐색은, 전문가들의 치밀한 통찰력에 힘입어 흥미를 더해갔다.

한데 흥미진진함과는 별개로 그때 그 장면을 지켜보던 유학생 신분의 나는 매우 낯선 기분이 들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국과 아랍권 산유국 간의 패권 경쟁 내지 권력 갈등의 시각에서, 이라크 침공의 의미를 규명하고 향후 전쟁의 파급 효과를 분석하는 작업일진대, 왜 미국은 대통령의 퍼스낼리티 같은 하찮고 지엽적인 문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통령 개인의 퍼스낼리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이야말로, 개인주의의 제도화를 지향하는 미국의 한계임이 분명할 것이란 어설픈 결론에 도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극도의 충격과 강력한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자니, 이라크 침공 당시 부시의 퍼스낼리티에 관심을 집중했던 이유를 새삼 상기하게 된다.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리더의 퍼스낼리티는 그(녀)가 내린 최종 결정의 의미와 함의를 진단하고 파악하는 데 결코 간과해선 안 될 핵심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을.

우리네 현직 대통령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대통령의 고통을 감히 그 누군들 헤아릴 수 있을까만은, 그 고통의 경험이 오늘의 대통령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 또한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최고 권력자의 장녀로서 누렸던 특권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던 배신과 배반의 나날을 거쳐, 잊힌 존재로 살아가는 동안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대통령 스스로의 고백 앞에선 숙연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던 대통령이 왜 최순실 부녀에게만은 절대적 신뢰와 무조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까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지금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퍼스낼리티에 주목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고질적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외양간이라도 고쳐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향후 대통령의 퍼스낼리티가 통치 능력 및 권력 행사 방식에 미칠 영향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필히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사이비 심리학자나 어설픈 전문가들이 나서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건 물론 절대 사절이다.

그보다는 진정성을 갖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후보 개개인의 퍼스낼리티 형성 과정에 대한 포괄적이고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길 희망한다. 이를 토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를 경우 예상되는 강점 혹은 장점, 약점 혹은 한계를 균형 있게 진단하고, 특별히 대통령으로서의 취약점 내지 부족한 점을 매끄럽게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데다 낯가림까지 있어 매일 저녁을 홀로 드신다는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믿을 수 있는 극소수의 ‘내사람’이나 눈에 뜨이지 않는 ‘비선’에 의지하고픈 유혹을 떨쳐내고,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소통창구를 공고한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작업이 필수 중 필수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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