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시장 침체가 건설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가운데 건설업체들의 향후 생존전략이 절실해지고 있다.
특히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지금의 강남지역 아파트촌 건립에 나섰던 시공사들이 저마다 명암을 짙게 드리운 채 쇠락의 길을 걷고 있어 시장 침체기를 건설업체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남 5인방'의 탄생
현재는 국내 부동산시장의 '왕좌(王座)'인 강남지역이 개발된 것은 이제 30년이 조금 넘은데 지나지 않는다. 지난 1970년대 영동(永東)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오늘의 강남은 태동한다. 여기서 영동(永東)이란 동(洞)명이 아니라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다. 77년 관악구가 탄생할 때까지 한강 이남 중서부는 모두 영등포구에 속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도심에 가까운 곳에 입지하려는 의지 때문인지 첫 아파트 사업지는 한강과 가까운 곳부터 시작한다. 압구정동을 시작으로 잠원동, 반포동, 대치동, 서초동 순으로 아파트 개발이 이루어진다.
강남지역에서 아파트를 공급한 업체는 압구정동에 약 7000여 세대를 쏟아낸 현대건설을 비롯, 한신공영, 우성건설, (주)한양, (주)삼호 등이 대다수 아파트를 공급했다. 또 대림산업과 라이프주택도 강남에 아파트를 공급한 실적을 갖고 있다.
최대 물량을 쏟아낸 업체는 한신공영이다. 한신공영은 현 서초구 잠원동과 반포동 일대에서만 1만2000여 세대를 공급한다. 무려 단지 수만 27차. 즉 잠원동은 말그대로 한신공영의 텃밭이었던 셈이다.
주로 방배동과 서초동 일대에 아파트를 공급한 (주)삼호는 4200여 세대를, 그리고 (주)한양은 잠원동과 반포동에 3900여 세대를 각각 공급했다. 우성건설 역시 대치동과 잠원동에서 4000여 세대를 공급했으며, 다소 늦은 80년대 초중반 개발된 개포지구까지 포함하면 무려 5000여 세대에 이르는 아파트를 강남에 쏟아낸 회사다.
즉 현대건설과 한신공영, 우성건설, (주)삼호, (주)한양 등 5개 업체는 오늘의 강남을 만들어낸 주역인 셈이다.
이들 건설사들은 크나큰 영광에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성장한 만큼 하락세도 빠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 5개 업체는 90년대 초반 5대 신도시 개발에도 참여해 다른 어떤 건설사도 따라올 수 없는 철옹성을 쌓아놓은 듯 했다. 그러나 이들 5개업체의 현재는 모두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5개 업체 중 한 곳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며, 나머지 업체도 사주가 바뀌는 질곡의 세월을 보내며 재기에 고심하고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5개 업체 모두 쇠락의 길 걸어
우선 강남 개발의 선구자격인 현대건설은 강남 개발 이후에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 자타가 공인하는 건설 명가(名家)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IMF 이후 급속한 위축에 빠지다 지난 200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 올해 말 매각을 앞두고 있는 입장이다.
서초구의 맹주 한신공영은 더욱 초라한 모습이다. 한신공영 역시 IMF란 파고를 넘기지 못하고 두 차례 매각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정비한 상황. 하지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엔 '잃어버린 10년'이 너무 큰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신공영은 지난 2003년 론칭한 브랜드 휴(休)를 새롭게 고쳐 ‘휴플러스’를 새로운 브랜드로 론칭, 새로운 도전에 나선 상태다.
㈜한양은 IMF보다 더 이전인 1993년 도산의 아픔을 경험했다. 신도시 건설 중 부실자재 사용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한양은 노조와 경영진의 다툼 끝에 창업주가 사퇴하는 상황을 빚었고 이후 대한주택공사가 인수해 주공 아파트 전문 시공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다시금 자리를 찾는듯 했다. 하지만 2000년 주공이 한양을 파산하면서 그간 회사를 지켜온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맞게 됐으며 결국 보성건설이 한양을 인수, 현재의 위상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수자인’을 새로운 아파트 브랜드로 내세운 ㈜한양은 조만간 모기업 격인 보성건설과 합병을 추진할 예정. 이렇게 되면 과거의 명성에 걸맞는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심리가 직원들 사이에 가득한 상황이다. (주)한양은 최근 양주 고읍 택지지구에 아파트를 분양하며 본격적인 시장합류를 선언할 예정이다.
대림산업 계열사인 ㈜삼호는 그나마 다른 4인방에 비해 양호하다. 무엇보다 모기업인 대림산업이 국내 5위권 건설사로 뛰어오른 여파 때문. 다만 이제 ‘삼호아파트’란 자체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브랜드 아파트가 분양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만큼 굳이 자체 브랜드로 가느니 ‘e-편한세상’브랜드 아파트를 짓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들 강남 5인방은 90년대 들어 5대 신도시 개발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강남에서 쌓아올린 '실력'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하지만 이들 5인방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으며 불과 10여 년만에 '전성기'를 마감하는 불운의 기업이 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주택사업의 포문을 열었던 이들 5개 업체가 지금은 모두 짙은 그늘 속에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주택 건설사업의 커다란 리스크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