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이 일관되고 표현도 크게 다르지 않아야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만약 달라지게 된다면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 듣는 이를 설득해야 한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보다 ‘맥락에 맞는’ 철학과 신념을 적절히 가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쉬울 수가 없다.
가장의 말이야 가능하다 해도 국가 단위까지 올라가게 되면 개인을 고려한 메시지를 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침묵이 최선의 답일 리가 없다. 대(對)국민은 물론 개인 메시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 말과 한자가 같아 발음도 비슷한 ‘가로우시(かろうし)’, 즉 과로사(過勞死)는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일본의 법정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지만 실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지난주 발표된 백서에 따르면 1743개 기업 직원 가운데 23%는 한 달에 80시간 이상 초과근무하고 있으며, 이 중 12%는 100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뇌출혈이나 정신질환은 물론 자살까지 감행을 하는 경우도 적잖다.
지난해 말 건물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24세의 여자 회사원. 도쿄대를 졸업하고 일본 최대 광고대행사 덴츠(電通)에 들어갔지만 휴일도 없이 일해야 했고, 53시간 연속 근무도 했으며 한 달에 100시간 이상까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우울증이 왔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격노하며 강한 한마디를 내놨다.“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개혁을 확실히 추진하겠다”고.
언뜻 아베 총리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정책적 일관성을 위한 전략적 한마디일 것이다. 저출산ㆍ고령화로 노동력이 크게 달리면서 생겨나는 이런 장시간 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지다. 아베 총리는 ‘일하는 방식 개혁 실현회의’를 만들어 직접 의장을 맡아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참이고, 13일 열린 이 회의에서 덴츠 여직원에 대한 사례가 언급될 수 있었다.
그러나 4대 개혁과제 중 노동개혁을 강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개인의 불행, 아니 국민의 고통에 대해서라도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규직 노조의 이기심이 국가 경제를 해친다는 지적의 목소리만 높다.
요즘은 참 사건·사고도 많다. 게다가 그 원인이 사회와 국가 구조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지도자의 한마디’가 절실하다.
세월호 사고까지 가지 않더라도 구의역 비정규직 사고, 농민 백남기 씨 죽음 논란 등에 대해 우리는 ‘국가의 미디어’인 리더로부터는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있다. 국론통일을 원한다면 내치(內治)를 위한 계산적인 한마디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침묵은 어쩌면 깊은 뜻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거나 곡해하기 좋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