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엘리엇’ 나와도 속수무책…제도 정비 시급

입력 2016-10-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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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방식 악용해 지난해 삼성물산 경영권 공격… 외국계 헤지펀드 장외거래땐 적발 가능성 없어

“외국자본이라는 이유로 차별할 수 없습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최근 삼성전자에 인적분할과 30조 원 규모 배당 등 내용이 담긴 주주제안을 했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기를 들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회사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그들도 자본시장 플레이어로서 국내 투자자와 공평히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폈다.

그러나 실상은 외국계 회사에만 허용된 규제의 빈틈 때문에 국내 투자자가 오히려 차별받는 신세다. 외국계 증권사 뒤에 숨어 불공정거래 소지가 큰 공매도 작전을 펼치는가 하면 파생상품을 활용해 막대한 상장회사 지분을 공시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사고판다. 그러나 아직 이들을 규율할 제도는커녕 제대로 된 처벌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19일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올 초 총수익스와프(TRS, Total Return Swap)를 악용한 지분공시 의무 위반으로 엘리엇 수사에 착수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법리가 복잡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다른 중요 사안에 밀린 탓도 있다”고 말했다.

TRS는 헤지펀드 등 투자자가 국내·외 증권사에 대신 주식을 매매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일정 수수료를 주는 형태의 파생거래다. 대신 거래하는 증권사는 주식 평가 이익을 원 소유주(헤지펀드 등)에게 넘기고 만약 손실이 나면 그에게서 보상받는다. 이때 해당 주식의 의결권과 지분 공시 의무는 증권사에 있다.

지난해 6월 2일까지 삼성물산 지분 4.95% 보유해 은둔의 투자자였던 엘리엇은 다음날인 3일 하루에만 보유 지분을 2.17% 늘린 7.12%로 공시하며 전략적으로 등장했다. 이에 엘리엇이 메릴린치, 씨티 등 외국계 증권사 여러 곳과 TRS 계약을 맺고 삼성물산 주식을 파킹해뒀다가 주주총회를 앞둔 시점에 의도적으로 명의를 변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즉시 조사에 착수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사후처벌은 물론, 사전에 불법 파킹거래 시도를 잡아낼 수 있는 법 규제도 갖춰지지 않았다. ‘제2의 엘리엇’이 등장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현재 한국거래소와 금감원, 한국은행 등은 장외 파생상품 거래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거래정보저장소(TR)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헤지펀드가 국내 금융회사와 TRS, 이자율스와프(IRS) 등 파생거래를 하면 해당 금융회사가 TR 보고 의무를 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처럼 헤지펀드가 외국계 금융회사와 거래하면 해당 금융회사는 소속 국가 TR에만 보고하면 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파생거래시 금융회사가 자국 TR에 보고하게 돼 있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이라며 “국내 상장사를 두고 외국계 회사들끼리 장외 파생거래를 했다면 국내 금융당국에서 사전에 보고받거나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출발점이 다른데도 적절한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은 시장에 더 큰 불평등을 조성하는 일”이라며 “금융당국은 규제 밖 헤지펀드로 인해 국내 기관은 물론 개인투자자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규제 공백을 메우고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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