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요.”
해외 펀드에 주력하는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을 준비 중인 지인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하반기 금융당국 등록을 앞두고 서류상 검토를 거의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빠뜨린 절차가 있어섭니다. 미리 알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모른 채로 넘어갔더라면 형사처벌을 받을 뻔했습니다.
이 업체는 운이 좋았지만 다른 운용사들은 지금 좌불안석입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금융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같은 반응이 “그런 신고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입니다.
현행법에서는 해외 펀드 운용을 외국환업무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산운용사는 펀드 설정 전에 미리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등록해야 합니다.
펀드를 새로 만들 때 금융당국에 여러 신고 절차를 거치는 것과 별개여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한 회사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무려 스무 곳이 넘습니다. 현재 등록된 자산운용사의 20% 수준이죠. 비싼 법률 조언을 받는 대형 운용사들도 포함됐습니다.
이쯤 되니 운용사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합니다. 애초에 중요 절차에 대한 안내가 미비한 탓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나머지 80% 운용사 중 해외 펀드 취급 업체들은 제대로 이행한 것이니 설득력이 조금 떨어집니다. 금융투자협회에서 처리해야 할 민원으로 보입니다.
반면 이런 주장은 한 번 들어볼 만합니다. “해외 재간접 펀드까지 외국환 업무에 해당하는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직접 해외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이미 설정된 모펀드에 투자하는 경우입니다. 대개 여러 해외 펀드에 분산 투자합니다.
운용사들은 “재간접 펀드는 ‘자기의 계산’으로 해외 주식과 채권을 직접 담는 것이 아닌데 외국환 취급 기관으로까지 등록할 필요가 있냐”고 지적합니다. 일반 개인 투자자가 여러 해외 펀드에 가입할 때 외국환 취급자로 등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 펀드를 고르는 운용자의 의사가 개입되는 만큼 당연히 외국환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반 투자자가 해외 펀드에 가입할 때는 중개기관을 거치기 때문에 해외 모펀드를 고르는 운용역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양쪽의 의견 차가 좁혀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난처해진 건 금융당국입니다. 당장 스무 곳이 넘는 운용사들에 대해 처분 결과를 내놓아야 합니다. 외국환거래법은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 원 이하의 벌금이 과해지는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운용사들을 대거 검찰에 고발해야 하는 부담감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고의성’이 없다며 편의를 봐준다면 오는 국정감사에서 집중 포격 대상이 될 것입니다.
최근 펀드 시장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이며 각종 규제를 정비한 금융당국이 성과를 인정받기도 전에 골칫거리가 또 생긴 샘입니다. 진짜 손톱 밑 가시를 보지 못한 업보로 여겨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