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지난해말 2016년부터 향후 3년간 적용할 물가안정목표를 새로 정하면서 ‘물가안정’이라는 한은 본연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이같은 방안을 결정한 바 있다. 이후에도 초과 이탈이 지속되면 3개월마다 후속 설명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반면 한은의 의연한 결기(?)에도 불구하고 이 총재의 설명책임은 맥 빠진 결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번 설명회 역시 뻔한 이유와 향후 좋아질 것이라는 장밋빛 언급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 소비자물가가 한은의 물가목표치를 밑돌던 2012년말부터 현재까지 한은은 낮은 국제유가와 가뭄 등에 따른 농산물가격 하락을 물가하락의 주된 이유로 들었다. 즉, 공급측 요인에 따른 물가하락에 한은이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또 향후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무한 반복했다.
실제 지난달 1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이 총재는 “앞으로 추세를 보면 저유가 효과가 점차 소멸될 것으로 보인다. 내수도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면 내년쯤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치로 접근해 나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은법 1조는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라는 문구로 한은의 설립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 1층에도 큼지막하게 ‘물가안정’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물가안정은 한은이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다.
혹자는 물가안정이 인플레이션 시대 산물로 지금과 같은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물가안정목표가 상한선만이 아닌 하한선도 정해져 있다는 점, 시장경제상황에서 인플레보다 디플레가 더 풀기 어려운 난제라는 점을 곱씹어 본다면 한은은 인플레는 물론 디플레에 대해서도 파이터가 돼야 한다.
1.25%로 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와 12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현실인 상황에서 디플레 파이터에 한계가 있다면 좀 더 솔직해 질 필요도 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할 때 국민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안정목표를 그 기준치인 소비자물가가 아닌 한은이 주장하는 기대인플레를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간 한은은 이중 잣대를 적용해 왔다. 즉, 물가가 높을 때는 전문가 기대인플레를, 지금처럼 물가가 너무 낮을 때는 일반인 기대인플레를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통상 전문가 기대인플레가 일반인 기대인플레보다 낮다는 점을 악용한 셈이다.
아울러 3년간 적용하는 물가안정목표는 중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이지 3년 안에 달성할 목표치는 아니라는 해명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문이다. 3년 반 넘게 물가안정목표치에 근접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높게 달린 포도(물가안정)를 놓고 결국 "신포도일 거야"라며 가버린 이솝우화의 여우와 한은이 다르지 않아 보여서다.
이참에 소비자물가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공론화해 볼 필요도 있다. 소비자물가가 장바구니 물가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경제 전반에 영향이 큰 전세나 집값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는 물가지표가 과연 맞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미 너무 올라버린 물가에 허덕이는데 한은은 물가가 너무 낮다며 고개 숙이는 일이 자칫 아이러니일 수 있어서다. 또 이달초 통계청이 내년부터 적용할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을 내놨다는 점에서 논의 시점으로도 적절해 보인다.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 말 확정할 예정 이어서다.
앞서 문우식 전 금통위원도 올 초 “작년 아파트 전세가격이 6% 가까이 올랐음에도 집세의 소비자물가상승률 기여도는 0.24%포인트로 담뱃값 기여도 0.6%포인트에 비해 낮다”며 “소비자물가의 하위 항목인 집세가 가구의 실제 주거비상승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사실상 소비자물가지수의 개편을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