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노 그란디(1865.6.4~1988.5.21)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다. 외무장관과 법무장관, 파시스트 최고 평의회 의장을 지냈다. 평의회 의장 당시 그는 무솔리니 축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차 대전 당시인 1943년 연합국에 시칠리아 섬을 점령당하자 참전을 종용했던 무솔리니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된다, 선전포고 이후 국민은 생필품 부족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다. 급기야 밀라노 등에서 13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는 대규모 파업이 발생한다. 파시스트 정권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평의회 의장 디노 그란디는 국왕 에마누엘레 3세의 지원을 얻어 무솔리니를 쫓아내기에 이른다. 정치란 이런 건가 보다. 파시스트 정권의 2인자라던 그란디였지만 명분 앞에서는 돌변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사실 1914년 무솔리니와 두 번 만난 뒤 무솔리니에 감화된 그란디는 무솔리니의 적극적인 옹호자가 된다. 이후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활동을 함께하면서 검은 셔츠단 결성을 계기로 무솔리니의 총애를 받게 된다.
1차 대전이 끝나자 이탈리아는 혼란을 틈타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한다. 이에 집권 세력과 군부 등은 위기감을 느낀다. 어떻게든 파시즘을 이탈리아에 뿌리내리려던 무솔리니는 사회주의자들을 분쇄하기 위해 1919년 3월 검은 셔츠단을 결성한다.
그란디는 예비역 병사들을 중심으로 추종자들을 모아 검은 셔츠단을 주도적으로 이끈다. 검은 셔츠단은 파시스트의 전위 행동대였다. 그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같은 정치적 반대세력에 린치를 가했다. 당시 공산주의 혁명을 두려워하던 이탈리아 정부는 검은 셔츠단의 폭력을 수수방관했다. 파시즘은 급격히 세를 불려갔고, 그란디도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