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1806.5.20~1873.5.8)을 보면 ‘천재란 타고나는 걸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3세 그리스어, 4~7세 플라톤의 대화편, 8~11세 라틴어와 대수학, 12세 논리학, 13세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아버지 제임스 밀의 철저한 관리 아래 그가 어려서 받은 교육이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은 아니었다. 질문을 하게 한 다음 토론을 하는 창의적 ‘영재교육’이었다. 이런 교육 덕분인지 그는 철학, 정치학, 경제학, 논리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친다. 이 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공리주의 철학과 자유주의 정치사상일 게다.
공리주의는 인간 행동의 윤리적 판단 기준을 쾌락과 고통에 둔다. 인간의 쾌락(행복)을 늘리는 것은 선한 행위이지만, 고통(불행)을 크게 하는 것은 악한 행위이다. 여기서 쾌락의 본질을 놓고 벤담과 밀은 갈린다. 벤담은 쾌락을 계량화할 수 있다, 즉 개개인의 균등한 감각적 쾌락으로 봤고, 밀은 감각적 쾌락만으로는 행복을 가늠할 수 없다며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개개인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경험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밀은 자유주의 정치사상에도 기여했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에는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고전적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돼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 권력이 아닌 사회적 다수에 의한 압제는 여전해 개인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밀은 새로운 각도에서 자유를 바라본다.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제재를 받아서는 안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회적 의미를 추가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에서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며 특히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