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X레이를 자신이 개발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므로 모든 인류의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은 이 발견으로부터 어떠한 특허나 이익도 얻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나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X레이 관련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이병국 동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빌헬름 뢴트겐(1845.3.27~1923.2.10)에 관한 얘기다. 이 교수가 칭송한 것처럼 그는 X레이라는 대단한 물건을 발명하고도 인류의 복리를 위해 이를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박애주의자다. 하지만 대부분의 박애주의자가 그렇듯 그는 평생 가난과 투쟁해야 했다. 사망할 즈음엔 거의 파산상태였다.
그는 크루크스 관을 사용해 음극선을 연구하다가 검은 종이나 나뭇조각과 같은 불투명체를 투과하는 방사선을 발견하고(1895년), X선이라고 명명했다. X선의 발견은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라듐을 발견한 것과 더불어 19세기 말의 2대 발견으로 일컬어진다. X선 발견은 단순한 발견에 그치지 않고 원자 물리학의 발전에도 획기적 공헌을 했다. 또 결정(結晶) 구조 연구에 대한 응용, 공학ㆍ의학 방면의 실용적 응용에도 이바지했다.
독일 렘샤이트(옛 레네프)에서 직물업자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1848년 네덜란드 아펠도른으로 이사해 위트레흐트기술학교에 다녔다. 그는 학교 교사의 초상을 불경하게 그린 친구가 누군지 말하기를 거부했다가 퇴학당했다. 이 일로 네덜란드나 독일의 김나지움에 입학할 수 없게 된 그는 시험만 통과하면 들어갈 수 있는 취리히 연방기술전문학교에 가야 했다. 그는 이후 취리히대학에서 공부했다.
학교 졸업 후 슈트라스부르크대 강사를 거쳐 호엔하임농업학교, 슈트라스부르크대, 뮌헨대 교수를 거쳤다. leeeunho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