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가 세계 2위 경제국인 중국과의 통화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일제히 중국 위안화 가치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카일 배스가 이끄는 헤지펀드 헤이먼캐피털매니지먼트다. 헤이먼은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과 원자재 채권 관련 투자상품을 대량으로 매도하고 중국 위안화와 홍콩 달러화에 대한 ‘쇼트(매도)’포지션에 집중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현재 헤이먼 포트폴리오의 약 85%는 앞으로 3년간 위안화와 홍콩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상품에 집중돼 있다. 배스 헤이먼 설립자는 “미국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는 이 기간 최대 40%까지 하락할 수 있다”며 “충격의 정도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스탠리 드루켄밀러와 데이비드 테퍼 아팔루사 설립자 등 헤지펀드업계 거물들도 위안화 가치 하락에 베팅했다. 드루켄밀러는 전설적인 헤지펀드 투자자 조지 소로스의 최측근으로 퀀텀펀드를 이끌었으며 지난 2010년 자신이 세운 펀드인 뒤켄캐피털매니지먼트를 청산한 뒤 개인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데이비드 아인혼이 이끄는 그린라이트캐피털도 위안화 하락에 베팅한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월가의 이런 움직임은 ‘헤지펀드의 대부’인 소로스와 중국 당국의 설전이 나오고 나서 더욱 격렬해졌다는 평가다. 소로스는 지난달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서 “중국 경제는 실질적으로 경착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에 아시아 국가와 원자재 생산국 통화 가치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위안화 가치의 안정을 중시하는 중국 지도자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위안화에 공매도를 취하는 과격한 투기꾼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중국 통화당국은 위안화 가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취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소로스를 ‘식탁 위에 날아든 한 마리 파리’에 비유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8월과 올해 초 위안화를 대폭 평가절하해 자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 중국의 자본유출 심화를 막고 수출을 부양하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경기둔화 우려를 고조시킨 것이다. 이후 인민은행은 홍콩 역외 외환시장에서 대규모 개입을 단행해 위안화 가치를 다시 끌어올렸다. 이는 위안화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해외 투자자들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중국 정부와 월가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대립은 25년 전 아시와 외환위기를 연상시킨다고 신문은 전했다. 1997년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소로스가 링깃화에 매도 포지션을 취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비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