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진보와 개혁의 정치를 위해?

입력 2015-12-1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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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무엇을 쓸까 망설였다. 지난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지니계수, 즉 소득 및 지출 불평등 계수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 터에 ‘안철수 탈당’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탈당 건에 대해 할 말이 왜 없겠나? 남은 사람 나가는 사람 할 것 없이 딱한 사람들, 걱정을 하고 비판을 하자면 끝이 없다.

생각해 보라. 진보와 개혁이 뭘 먹고 자라겠나?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이다. 이것 없이는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을 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래서 진보와 개혁의 정치는 보수의 정치보다 어렵다. 보수야 상대를 비판하기만 해도 되지만 진보와 개혁은 새로운 것으로 쉽게 불안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내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진보와 개혁의 정치를 어떻게 해왔나? 비전과 희망을 주기는커녕 지역감정에 올라타고 나서 상대를 비난하거나 불평불만을 느낀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치를 해왔다. 보기에 따라서는 보수진영보다 더 안이한 자세로 더 쉬운 정치를 해왔다.

결과는 지금과 같다. 패하고 또 패하고, 그러다 패인을 두고 서로 찢어지고 있다. 그러고도 보수의 정치와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감조차 없다. 남은 쪽이나 떠나는 쪽 모두 여전히 ‘이기자’만 외친다. 무엇으로 이기겠다는 것인지, 또 이겨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모여 있어도, 쪼개져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 차라리 그 이야기는 접어두는 것이 옳겠다. 다시 돌아가 지니계수 이야기나 하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진보와 개혁의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얼마나 한심한 모습인지나 이야기하자.

지난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지니계수를 발표했다. 그중 한 부분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시장소득이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가 아닌 가계지출 지니계수, 즉 가계지출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계수이다. 발표된 가계지출 지니계수는 0.262, 별로 높지 않은 데다 2010년의 0.261이나 2013년의 0.255에 비해 별 변화도 없다.

무슨 말이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가 심하다.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 정도이지만 실제 빈부격차를 의미하는 자산 지니계수는 0.7 이상이 된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가계지출 지니계수는 0.262, 빈부격차가 심한 데 비해 가계지출은 그만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즉 없는 사람도 돈을 쓸 만큼 쓰고 있다는 뜻이다.

형편이 되어서 그렇게 쓰면 더 이상 좋을 게 없다. 빈부격차와 관계없이 삶의 질은 그만큼 평등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교육비 등 형편이 안 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쓰는 강요된 지출이 있거나, 아니면 부동산 활성화 정책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유도된 지출일 수 있다는 뜻이다.

만일 그렇다면 큰일이다. 빚을 내 가면서 쓰거나, 있는 자산을 팔아 가며 쓰는 상황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루가 다르게 느는 가계부채 등은 그럴 수 있음을 말해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수 있다.

정부로서는 당연히 이러한 부분에 대해 큰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많은 부분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함부로 창업을 권유하기도 하고, 낮은 금리로 추가 대출을 유도하기도 한다. 또 부동산시장 활성화란 이름으로 가계지출을 유도하기도 했다.

정부는 그렇다 해도 진보와 개혁의 기치를 드는 야당은 어떤가? 마땅히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진보적 과제에 대해서 말이다.

지난주 이러한 지표가 발표되고서도 야당은 별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언론이 가계지출의 지니계수가 낮은 것을 좋은 일인 것처럼 보도했건만 여기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논평 하나 없었다. 내부 싸움에 바쁘다고? 그래도 그렇지, 어느 한구석에서는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묻고 싶다. 무엇 때문에 모이고 무엇 때문에 찢어지나? 진보와 개혁의 가치가 어디에 있고, 또 그를 위한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은 쪽, 떠나는 쪽 모두 스스로 물어봐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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