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사를 보다보면 현실 세상과의 괴리감이 커집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100~200원 차이에도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해외 기업들의 실적 기사를 쓰면서는 수 억 달러, 수조 원 등 거대 단위에 무뎌져, 억 단위가 아니면 ‘에계계’ 소리가 나오곤 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괴리감이 격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기름 값’입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8일부터 올해 12월 8일까지 두바유가 40%가 넘게 폭락했는데요.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 가격은 14% 하락한데 그쳤습니다.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 평균 휘발유 값은 9일 현재 리터당 1530원입니다.
요즘 외신은 유가 때문에 그야말로 난리입니다. 지겨워질 법도 한데 주요 외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유가 관련 기사를 웹사이트 전면에 배치합니다. 그만큼 유가가 바닥을 뚫을 기세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죠. 불과 지난해 중반만해도 배럴당 100달러대였던 유가가 지금은 40달러 선마저 무너졌고 이제는 30달러 선마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죠.
그런데 말입니다. 차량을 소유하고 계신 분은 아실 겁니다. 국제유가 하락세로 국내 휘발유 가격이 1200원, 1300원대 주유소가 생겼다는 뉴스는 봤지만 정작 그 주유소가 어디에 숨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자주 가는 동선에서 그나마 기름 값이 싼 주유소를 파악해놓고 그곳을 이용하는데요. 사실 그 차이는 10~20원도 채 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때마다 국제유가 흐름과 내 차가 먹는 휘발유 값의 괴리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휘발유 값이 비싼 나라에 속합니다. 지난 2일 블룸버그가 60개국을 대상으로 지난 9월 29일부터 11월11일까지 휘발유 가격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전체 조사대상 60개국 중 가장 휘발유 값이 비싼 국가 2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기간 한국의 휘발유 값은 갤런 당 6.57달러(약 7900원)였습니다. 이웃나라 일본(갤런당 5.79달러)과 중국(4.68달러)보다 비싼 겁니다. 정유업계에서는 국제 유가 하락세에 비해 국내 휘발유 가격 영향이 미미한 것은 크게 유류세와 환율, 두 가지 요인으로 꼽고 있는데요. 사실 생각보다 빈약한 이유에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 폭락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유가 하락이 지속하는 가운데 다음 주로 예정된 미국 금리인상 시점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고조된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유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재차 고심해 봐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한국은행 자문위원을 맡았던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8일 블룸버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이라면 올해 금리인상 결정을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주변국과 미국 수출업계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기준금리 인상을 미루는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 증시가 미국 금리인상 전망만으로도 일희일비하는 가운데 저유가와 미 금리인상이 맞물리면 그 여파가 어떤식으로 올지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저유가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