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제2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 정기선 전무<사진>가 초고속 승진 코스를 밟고 있다.
조(兆)단위 적자로 현장인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구조조정 대상인 상황에서 정 전무에게 조선과 해양 영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기면서 3세 경영체제가 본 궤도에 진입하는 모습이다. 이에 심각한 경영난을 맞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수익성 개선보다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7일 부사장 6명, 전무 15명, 상무 36명, 상무보 57명 등 모두 114명에 대한 임원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정 전무는 이번 인사에서 해양플랜트에서 천문학적 손실을 만회하고자 조선과 해양 영업본부를 지휘하는 총괄부문장을 맡게 됐다.
정 정무는 지난해 부장에서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무로 승진했다. 당시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상호중공업 등 조선 3사 임원 262명 가운데 31%인 81명을 감축하면서 이뤄진 정 전무의 인사는 다소 파격적이었다. 다만 일각에선 정몽준 이사장이 32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랐던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그룹 후계자인 정 전무의 승진 코스는 적절치 조치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사장단 전체가 급여를 반납할 정도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 전무의 초고속 승진은 다소 이른감이 없지 않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현대중공업 측은 사장단 7인을 비롯해 임원 300여 명, 조선 계열사 부서장급 450여 명의 급여 반납으로 연간 250억원 정도의 비용절감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전무의 이번 승진으로 정몽준 이사장이 지난 1991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너십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획부터 영업까지 핵심 부서를 거치면서 정 상무의 위상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로 정 상무는 지난해부터 세계해양박람회, 포시도니아, 국제 선박·조선·해양기술 기자재박람회(SMM) 등 주요 조선업 관련 박람회에 연이어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메이저 선주사 대표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내부적으로 정 전무 경영권 승계를 위한 구조조정 또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앞서 최길선 회장·권오갑 사장 체제로 전환한 뒤 조선 계열 3사의 중복업무 통합,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결국 지주사 출범 또는 조선 계열사 통합 이후 정 전무의 최고경영자(CEO) 승진 시기가 결정될 것이란 시각이 중론이다.
현대중공업에 정통한 관계자는 “사상 최악의 수익성을 보이면서 정몽준 이사장의 경영 복귀설(設)이 나오고 있지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이보다는 아들 정 전무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더욱 빠르게 진행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2년생으로 올해로 33세인 정 전무는 청운중학교와 대일외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육군 ROTC(43기)로 입대해 중위로 전역했다. 첫 사회생활은 크레디트스위스(CS) 인턴사원 근무였다. 이어 동아일보 인턴기자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