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때문에 힘들지만, 또 발레 때문에 사는 힘을 얻지요.” 프로데뷔 19년 차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이자 맏언니 김지영은 “35살까지만 춤을 추려고 했다”는 말과 달리, 발레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18일 서울 예술의 전당 국립발레단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김지영은 이날도 군부대 방문공연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그는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11시부터 6시까지 리허설을 한다. 그 후 남는 시간에는 재활훈련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발레를 위한 생활을 하는 셈이다.
예원학교를 거쳐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김지영은 1997년 최연소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당시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두 달 만에 수석무용수가 됐다. 이후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하다가 2009년 다시 국립발레단으로 컴백했다. 뛰어난 점프와 턴, 기본기로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는 김지영은 빠르지 않은 나이인 10살 때 발레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발레를 시작하기 전에는 발레를 본 적도 없다던 그는 우연히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리를 찢는 모습을 보고 발레의 매력에 빠졌다.
“그 당시에는 발레학원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노란 전화번호부 책을 직접 찾아서 발레학원에 전화했어요. 저는 원래 몸도 약하고 조용했어요. 그런 아이가 열성적으로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 부모님도 놀라실 수밖에 없었죠. 발레를 시작하기 전에는 칭찬 같은 걸 들어본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발레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셨는데 ‘잘 따라하네. 천재인가 봐’라는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나요.”
이후 발레에 운명을 맡기게 된 김지영은 러시아 바가노바 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김지영이 나온 러시아 바가노바는 황실 발레학교로 파리 오페라 발레학교 다음으로 전통 있는 학교다. “학교에서 10살부터 18살까지 체계적으로 발레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어요. 발레 수업뿐 아니라 듀엣 수업도 하고 발레의 역사부터 메이크업, 음악, 각종 무용, 스트레칭 등 진짜 프로 무용수를 키워내는 다양한 교육을 받았죠.”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에서 활동한 김지영은 2009년 다시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왔다. 그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만든 데에는 당시 최태지 단장의 제안도 있었지만 네덜란드 집에 도둑이 들면서 확실히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원래 외국에 나갈 때부터 한국에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무엇보다 집에 도둑이 든 사건이 가장 컸어요. 도둑 얼굴을 직접 보고 나니까 더는 네덜란드에 있고 싶지 않더라고요.”
발레를 너무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지만 그에게도 발레가 밉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존재했다. “유학 갔을 때 핑크빛 미래를 꿈꿨지만 가족들과 떨어져서 생활해야 했고, 발레 때문에 행복할 줄 알았던 일들이 저를 힘들게 했을 때 정말 그만두고 싶었어요. 또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연습했는데 부상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도 힘들었죠. 저는 발레를 사랑했고 아직도 발레는 제 전부에요. 물론 발레가 너무 절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춤을 추고 땀을 흘리면서 기쁨을 느끼면 ‘이것 때문에 내가 사는구나’ 힘을 얻기도 해요.”
내년이면 프로데뷔 20년 차다. 김지영은 “10년이 먼 얘기 같지만 금방 가더라”며 “35세까지 춤출 줄 알았는데 아직 춤을 추고 있다”면서 웃었다. 이어 “언제 그만둘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아주 먼 얘기 같지는 않다”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모든 무대들이 점점 소중해진다”고 말했다.
“강수진 단장님의 마지막 무대를 봤는데 끝나고 단원들이 꽃 한 송이씩 주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정말 소박한 꿈이 있다면 제 아이가 저의 마지막 무대를 꼭 봤으면 하는 바람이죠. 저도 훗날 그런 은퇴무대를 가진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