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우리술 이야기] 우리 술과 세금

입력 2015-10-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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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술에는 일반상품과 달리 주세라는 별도의 세금이 부과된다. 한국은 원료, 용기, 포장 비용 등의 제조원가와 이윤을 포함한 금액에 술 종류별로 5~72%까지 주세를 부과한다. 즉, 좋은 원료를 사용하고 멋있는 용기에 담은 비싼 술은 세금도 많아지는 종가세 체계이다. 이에 비해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술 가격이나 포장 등에 관계없이, 술 종류별로 술의 양에 따라 주세를 부과한다. 즉 과일주는 리터당 얼마, 맥주는 리터당 얼마, 위스키는 리터당 얼마 등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 체계이다. 언뜻 생각하면 비싼 술에 더 많은 세금을 매기는 한국의 종가세 체계가 좋아 보이지만, 세계 주요국들이 술에 대해 우리와 다른 종량세 체계를 채택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술에 부가적인 주세를 부과하는 것은 조세수입 확대 외에 국민건강, 술 문화와 산업 발전 등과도 관계가 있다. 술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기호식품이지만, 많이 마시면 알코올 중독 등으로 건강에 좋지 않고 사회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주세는 국민의 과도한 음주를 방지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술은 한 나라의 문화와 농업, 관광 등의 산업과도 밀접히 연결돼 있다. 당연히 주세도 음식 문화와 산업 발전 등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운용돼야 한다.

외국의 종량세제에서는 같은 종류의 술은 비싼 술이나 싼 술이나 세금이 같기 때문에 비싼 술의 경우 상대적으로 세금 부담이 적다. 예를 들어 술 한 병에 주세가 1000원 부과되면, 1000원짜리 술은 2000원이 돼 가격이 두 배가 되지만, 1만 원짜리 술은 1만1000원이 되어 오른 가격 폭은 10%에 불과하다. 결국 싼 술이 비싼 술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해져 싼 술 생산과 소비가 줄어든다. 국민들은 싼 술을 많이 마시기보다 비싼 술을 조금씩 마시는 문화가 형성돼 국민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술 제조업체는 저가 술을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가격경쟁력을 키우는 것보다 고급 술을 만드는 품질 경쟁력에 주력하게 된다. 고급 술 산업이 커지면 관련 농산물의 생산과 기자재 산업도 고부가치화한다.

한국의 경우 소주 막걸리 등 싼 술은 국산이, 와인 위스키 사케 등 수입 술은 고급 술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주세를 종가세 제도로 운영해 온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국에서는 세금 때문에 고급 술이 경쟁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몇 년 전부터 붐이 일었던 수제맥주 산업도 기존 대형업체와 수입맥주와의 가격 경쟁이 어려워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좋은 원료로 소량 생산하는 수제 맥주는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데다 세금마저 많기 때문이다.

전통주 등 우리 술 산업도 상황이 비슷하다. 좋은 우리 술을 어렵게 만들어도 가격이 생수 수준인 소주와 기존 막걸리와 경쟁하기 어렵다. 일제강압기인 1930년대에는 조세수입 중 주세 비중이 30%에 달했다. 현재는 주세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이제는 주세제도를 조세수입보다는 술 문화와 산업 발전, 그리고 국민건강이라는 시각에서 운영해야 한다. 주세제도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기존 소주나 막걸리업체의 반대와 함께 고급 수입 술의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있지만 논의와 준비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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