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금융 부문 개혁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는 공공·노동·교육을 포함한 이른바 4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금융이 가장 더딘 흐름을 보인 것을 겨냥한 작심 발언으로 읽힌다.
금융은 우리 경제의 혈맥과도 같은 중차대한 영역인 만큼 정부와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각종 제도 개선을 부르짖고 있다. 금융당국은 낡은 제도와 관행을 깨고 시스템 전반에 혁신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안에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정책금융 혁신 방안을 내놓는다. 정책금융 혁신 방안은 공청회 등을 거쳐 금융개혁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지만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이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의 경우 118개 비금융 자회사의 정리 계획에 대한 얼개도 나온다.
더불어 금융위는 기업금융 기능 보강에 중점을 둔 금융투자업 경쟁력 강화 방안, 금융민원·분쟁 처리 방안, 건전성 규제 개혁 방안도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부터 ‘국민 체감 20대 금융 관행 개혁’ 과제를 발굴해 개선해 나가고 있다. 금감원은 국민 대다수가 금융거래 과정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민원처리 과정이나 금융 소비자, 금융회사 관계자와의 간담회에서 제기된 사항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개혁을 위해 금융당국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확실한 어젠다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책금융 혁신 필요성은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고, 제도 개선 역시 금융당국이 상시적으로 수행할 업무다. 예컨대 노동개혁 부문의 ‘임금피크제’와 같은 상징적인 요소가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금융연수원의 인사 행태를 보면 제대로 된 금융개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후임자 인선이 5개월 넘게 지연되면서 이런저런 뒷말만 무성했던 금융연수원장 자리에 조영제 전 금감원 부원장이 선임됐다. 조 전 부원장은 지난 4월 이장영 현 원장의 임기 만료 시점부터 내정설이 돌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경남기업 특혜 대출 의혹, 장녀 결혼식 축의금 논란 등에 발목이 잡히면서 인선이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 출신의 다른 인물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경남기업 특혜 대출 의혹의 경우 조 전 부원장은 검찰 조사 끝에 지난 6월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자격 시비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금융노조는 조 전 부원장을 가리켜 부적격자의 낙하산 인사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특정인의 입김이 작용해 결국 조 전 부원장이 연수원장 자리를 차지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진위를 떠나 어찌 됐든 금감원 퇴직 인사가 금융연수원 원장직을 도맡아 온 전통(?)이 유지됐다.
금융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낙하산 인사부터 뿌리 뽑는 게 금융개혁의 첫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