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회사채시장 안정에 나서기로 했다. 최근 중국 경기의 경착륙 우려로 국내 주식·회사채 등 금융시장에 충격이 발생한 데 이어 올 하반기엔 미국의 금리 인상도 예정돼 있어 자금시장 경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난을 겪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에 1조원 정도 자금을 지원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27일 회의를 열어 산업은행의 신용보증기금(신보)에 5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돕기 위해 산은에 3조4000억원의 대출을 취급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한국은행과 정부가 신용보증기금의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등 2년 전에 마련했던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은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될 가능성을 막으려는 것이다.
◇ 기업 자금경색 막아라…시장불안에 선제 대응 = 최근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발행사정이 과거에 비해 급격히 악화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발 충격으로 인한 외국인투자자들의 채권 매도 등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올 연말 전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추후 시장의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회사채 가격이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미 회사채 시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적자에다 중국발 충격 등 때문에 일부 초우량등급의 회사채만 소화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올 하반기 채권시장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동안 조선·해운 등 업황 부진으로 대규모 적자를 낸 기업들이 만기도래하는 회사채의 차환이나 자체 상환에 실패해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올해 회사채시장에서는 기존 발행한 회사채의 만기도래 규모가 35조원이며 이중 A등급 이하의 비우량 회사채는 15조9000억원 규모가 만기가 된다.
2년 전인 21013년 7월 8일 금융위와 기재부, 한은 등이 함께 마련한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에서 시장안정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의 발행한도를 6조4000억원으로 예상했고 현재 약 5조5000억원이 지원된 상태다.
◇자구계획 제대로 됐나…발권력으로 기업지원 논란 = 시장의 위기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일반 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막아주는 것에 대한 논란은 또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유동성에 몰린 기업이 지원을 신청하면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회사채안정펀드 등이 참여하는 차환발행심사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만기도래분 중 일부는 기업이 자력 상환하는 경우도 있고 자구계획을 이행하도록 요구하지만 특정 민간 기업을 위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동원되는 셈이어서 특혜로 비쳐질 수 있다. 특정 부분의 지원 수요에 대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도 논란이고 공급된 유동성의 처리문제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은 특정 기업을 지원한다기보다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한은의 소임에 맞춰 시장의 위기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