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 14] 사람과 브랜드 그리고 생태계

입력 2015-08-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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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비소프트 김형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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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박사 논문 포기하고

“SW기업 만들자” 도원결의

버블 붕괴 때 임금 자진삭감

직원들이 가장 큰 버팀목

글로벌 시장에 특화된 브랜딩

파트너십 통한 생태계 구축

고객과 지식 공유하며 성장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 비전

30년 전, 저는 대학입학 원서를 손에 달랑 들고서 처음 서울 땅을 밟았습니다. 법학과 지원서를 들고 원서 제출을 위해 줄을 섰는데, 제 순서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밀봉된 원서 봉투를 뜯어 지원 학과를 ‘경영학과’로 고쳐 적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게 될 운명이라 그랬던 걸까요. 이후 하나은행 경제연구소와 대기업 계열사의 유명한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에서 일하며 저도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들이 느끼는 애환을 모두 알게 되었지요. 카이스트 경영공학 박사 과정에도 진학하게 됐습니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마지막 단계. 논문 작성을 본격적으로 해보려는데, 그들이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15년간 저와 함께 투비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최용호 대표이사, 송화준 최고기술경영자, 김영현 최고전략책임자 3인입니다. 이들과 투비소프트 설립을 위해 도원결의(桃園結義)한 뒤, 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짐을 싸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학교를 나왔습니다.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3명의 동료에 대한 신뢰가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 서로 다른 전문 역량을 지닌 동료들이 꼭 필요합니다. 혼자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의 아이디어만 믿고 1인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함께할 수 있는 팀이 꾸려지지 않는 한 사업을 시작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때는 닷컴 버블이 붕괴되던 2000년. 6월부터 창업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여 7월 1일 드디어 투비소프트가 진정한 회사의 모습을 갖추며 설립됐습니다. 4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1년 뒤 창립멤버 11명이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할 수 있게 됐고, 15년 새 270여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투비소프트도 초창기 고비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창업 초기 3~4년차 ‘데스밸리’에 빠진 기업들에게 나타나는 자금조달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2003년 창업 4년차 시절 직원 구조조정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자진해 월급을 절반으로 줄이고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하자고 말해주어, 사람도 회사도 지킬 수 있었지요.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투비소프트의 정식 제품이 출시된 것은 창업 5년 만인 2004년이었고, 직원들의 임금이 원상복귀된 것은 이로부터 딱 1년 후였습니다. 당시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 이젠 대부분 그룹장, 본부장이 되어 관리자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저는 투비소프트가 15년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을 앞서 언급했듯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창립을 결심할 수 있게 해준 3인, 힘든 시기를 어떻게든 함께 하겠다고 말해준 직원들, 미래를 함께 그려가고 있는 지금의 200명이 넘는 직원까지. 이 모든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투비소프트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보통 귀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존재하면 인복을 타고났다고 하지요. 운이 좋게도 저는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복, ‘인복’을 타고 났던 것 같습니다.

‘사람’ 다음으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브랜드’입니다. 소프트웨어는 결국 브랜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회사는 자국과 비교했을 때 후진국으로 가서 사업하기는 힘들고, 선진국으로 가서는 브랜드가 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게 되는 비중이 커집니다. 그렇다면 브랜드가 없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하더라도 국내 이외의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거의 0%에 가깝겠지요. 투비소프트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여 창립된 회사입니다.

최근 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타깃으로 하는 앱 시장은 국내와 해외시장 진출을 동시에 하는 구조도 있을 것입니다. 사업 모델에 따라 다르겠지만 투비소프트 같은 경우엔 플랫폼 사업을 하다 보니 로컬인 한국에서 기반을 닦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확실한 자기 시장이 없으면 실패할 확률이 99%는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반 마련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일 년에 100만 달러 정도는 손해를 봐도 회사 경영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글로벌 시장 진출에 문제가 없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투비소프트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100만 달러의 손실이 기업 존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수익을 올리게 됐을 시점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많은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우리처럼 꽤 오래전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브랜드’를 시장에 인지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어 거의 모든 회사가 실패했거나, 실패에 가까운 경험을 했지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6년 전에 내린 결론은 ‘타지에 깃발을 꽂고 법인을 만드는 게 비즈니스가 아니다’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투비소프트는 법인을 직접 설립하는 대신 글로벌 M&A를 대안으로 택했습니다. 이것이 2013년 12월 말, 미국 넥사웹(Nexaweb) 테크놀로지를 인수해 현지 법인화한 배경입니다. 현재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시장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브랜드 어필을 위해서 글로벌 M&A가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올해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하면서는 국내외 시장에서 통합 브랜드 역할을 할 신제품 개발에도 힘써야 했습니다. 2014년 4월, 글로벌 통합 브랜드로 출시한 ‘넥사크로플랫폼(nexacroplatform)’은 이전 제품인 ‘엑스플랫폼’ 출시 이후 약 5년간의 개발 끝에 탄생한 제품인데요. 거기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아키텍처를 가진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투비소프트의 남다른 원칙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트렌드와 빠른 기술적 변화에 대응해서 독보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내 브랜드 품질을 향상시키는 능력이 우리의 핵심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해외시장에서의 안정화 단계에 오르기까지 이 여세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브랜드 파워를 쌓아나가는 것’을 숙제로 삼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에서 사람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생태계’입니다. 투비소프트의 비전 선언문에는 “우리는 시장에 특화된 브랜딩과 견고한 파트너십을 통해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다. 고객과 파트너는 우리와 지식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해 나아갈 것이다”라는 말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비전을 직원들과 1박2일 워크숍에서 함께 만들었는데요. 2년여 기간 동안 토론하며 기업의 경영철학을 담아 정교하게 다듬은 내용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계 전문가 집단인 직원들의 생각이 담긴 비전이므로 이것이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핵심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투비소프트는 회사 내에 별도의 개발생태계 조성 부문을 두고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생태계 조성에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일례로 개발자들이 만든 코드들과 투비소프트의 신기술을 공유하고 축적하는 장인 ‘플레이넥사크로커뮤니티’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보통 개발자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장벽에 가로 막히면 대개 인터넷검색을 통해 찾아낸 샘플을 활용하게 되는데, 저작권 이슈 등 위험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만든 커뮤니티입니다. 우리의 플랫폼에서 공유되는 코드는 최소한 저작권 이슈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왜 그런 걸 하느냐”며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지만, 우리는 진정한 개발 생산성이 무엇인지, 고객에게 돌아갈 혜택 그리고 앞으로의 회사 운명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는 생태계적 마인드가 없으면, 결국 우리 투비소프트의 지속적인 성장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력>

1984년 2월 배영고등학교 졸업

1989년 8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학사)

1993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석사)

2000년 2월 KAIST 경영공학 박사과정(수료)

2000년 7월~ ㈜투비소프트 대표이사

2002년 9월 스탠퍼드대 벤처경영자과정수료(SEIT 2002)

2005년 1월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OLP 과정 수료

2010년 11월 ‘SW 산업인의 날’ 대통령 표창

2013년 12월 ‘제14회 SW 산업인의 날’ 산업포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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