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그곳에 장이[匠人]의 숨결이

입력 2015-06-1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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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천금 같은 단비가 내렸다. 이호준 시인은 페이스북에서 “비 온다. (중략) 신명나게 술 한 병 땄다. 아침까지 쉬지 않고 와도 좋겠다. 밤새 마셔도 좋겠다,고 쓰는데 비 그쳤다. 젠장! 시집간 애인 돌아온 듯 반겼더니 술, 괜히 땄다”며 일찍 그친 비를 아쉬워했다. 새벽 출근길 촉촉이 젖은 나무들이 싱그러운 향을 강하게 풍기니 비가 더욱 고맙다. 사무실 내 자리 뒤 벽면엔 6·7·8월 달력이 세로로 죽 붙어 있다. 여름휴가 일정을 표시하는 용도다. 날짜를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가는개마을’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잠시 들렀던 곳이다. 마을 이름이 참 독특한데, 행정상으로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세포마을이다.

570개의 보석같이 빛나는 자잘한 섬들이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동양의 나폴리’ 통영. 시인 유치환이 애달픈 마음으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흔들던, 저 푸른 해원을 품은 곳이다. 어디 그뿐이랴.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시인 김상옥·김춘수, 화가 전혁림 등이 꿈을 키웠던 곳이다. 그래서 통영은 ‘예술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통영 최고의 야경을 자랑하는 통영대교를 건너 첫 번째 고갯마루에서 비좁은 샛길로 들어서면 솟대들이 팔을 벌려 안아주는 정겨운 동네가 있다. 바로 가는개마을이다. 가는개는 이 지역 토박이말로, 해만(海灣)의 넓이가 좁고 가늘게 형성된 포구를 일컫는다. 예부터 옹기장이, 소반장이, 대장장이, 삿갓장이, 기와장이 등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탁월한 능력을 지닌 수많은 장이가 살던 곳이라 ‘가는이 고개’ ‘월서 정씨 오매불망비’ 설화 등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마을에서 장인(匠人)의 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장이’는 일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이란 뜻을 더할 때 쓰는 접미사다. 장인(匠人)이라는 뜻이 살아 있는 말로, 기술자, 전문가 뒤에 쓰인다. 땜질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땜장이, 음식을 올려놓는 작은 상(床)인 소반 만드는 기술을 지닌 이는 소반장이, 옹기 만드는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은 옹기장이다. 구두장이, 간판장이, 양복장이, 안경장이, 갓장이 등도 수공업적 기술을 지닌 전문가이므로 장이가 따른다.

장이와 반드시 구별해 써야 할 말로 ‘쟁이’가 있다. 쟁이는 명사 뒤에 붙어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지닌 사람이란 뜻을 더한다. 수다쟁이, 개구쟁이, 겁쟁이, 고집쟁이, 떼쟁이, 깍쟁이, 말썽쟁이, 멋쟁이 등의 사례처럼 성질, 습관, 행동, 특성을 담고 있다. 또 환쟁이, 글쟁이, 중매쟁이, 침쟁이, 오입쟁이 등 남을 낮잡아 부르는 말에도 쟁이가 붙는다.

아직도 장이와 쟁이를 구분하기 어렵다면 이것만 기억하자. 기술자·전문가를 나타낼 때는 ‘장이’, 그 외에는 ‘쟁이’를 붙인다. 양복장이는 양복 만드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양복쟁이는 양복 입은 사람을 낮잡아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경을 직접 만들면 ‘안경장이’, 안경을 사다 쓰면 ‘안경쟁이’가 된다.

일자리가 귀한 시절이다. 청년실업률이 9%를 넘어서고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을 강요당하는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당당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이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일을 즐기는 장인정신만이 험난한 시기를 넘을 무기가 될 것이다. 일은 누구에게나 삶의 보람이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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