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상장사의 지배구조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이와 관련한 펀드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기업 지배구조의 경우 경영상 의사결정이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작년부터 주요 이슈로 부각돼 왔다. 이에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 입장에서도 중장기적으로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에 주목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그동안 저평가된 내재가치에 주목했던 이른바 ‘가치 전문 투자자’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지배구조 이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그 주목도를 높여 지배구조 이슈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치주 대가들 SK C&Cㆍ삼성물산 등 지배구조 개편기업 포식 중=17일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가치주 대표 펀드들이 보유한 포트폴리오 가운데 지배구조 수혜주로 꼽히는 종목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기준일: 2015.1.2).
국내 대표 가치투자 맏형격인 신영자산운용은 현재 대표 펀드인 ‘신영마라톤펀드’에 현대글로비스(1.79%), 삼성물산(0.73%), 삼성SDS(3.72%), 제일모직(0.15%)을 편입했다. 이들 종목은 오너 지분율이 높은 대표적 지배구조 개편 수혜주로 꼽힌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저성장 국면에서는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꺼리게 되므로 대주주 지분 가치가 중요하다”며 “실제 2세, 3세로 기업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M&A나 배당 등 기업의 구조나 전략 등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주주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긴다”고 전했다.
한국밸류운용이 운용하는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도 현대모비스(2.26%)를 편입했으며, 신한BNP파리바운용의 ‘신한BNP탑스밸류펀드’도 SKC&C(1.27%)와 삼성물산(0.95%)을 펀드에 담았다.
신한BNPP운용 관계자는 “사실 Tops Value 펀드는 기업 지배구조 측면보다 기업 내재가치 측면에 초점을 두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며 “SK C&C나 삼성물산 등은 기업 지배구조 이슈와 더불어 해당 기업들의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 때문에 편입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한 기업이 내재가치가 높아진다는 측면에서는 사실상 내재가치와 지배구조 투명성은 동의어 수준이다.
SK C&C는 전통적 가치주 투자자들과 더불어 공격적 가치주 투자가들도 주목하는 종목이다. SK C&C는 현재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이 40%가 넘어 지주사인 SK를 지배하고 있는 회사다. 이와 함께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SK와 합병 가능성이 점쳐지며 지배구조 개편 이슈 수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종목이다.
실제 지난해 우수한 성과를 기록한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제일모직(3.5%)과 SK C&C(2.8%)를 포트폴리오에 가장 많이 담았다.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 지배구조 수혜주로 꼽히는 삼성SDS(2.3%)와 현대글로비스(2.3%)도 펀드에 잇달아 편입시킨 것.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과거 대비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서서히 나아지고 있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이 같은 포인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지배구조 개편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기업 자체에도 긍정적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리 대표는 이어 “삼성이 결국 배당금을 높이겠다고 밝힌 것은 향후 주주들을 달래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를 유지할 경우 주식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지배구조 이슈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삼성운용이 지난해 인수합병(M&A)과정에서 주가가 높아지는 가치주를 찾아 투자하는 전략으로 출시한 ‘삼성밸류플러스펀드’도 SK C&C를 3.7% 편입하고 있다.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 삼성전자 지분 전량 매도 왜?=결국 국내 대표 가치투자 대가들이 지배구조라는 이슈에 주목하면서, 대표기업이라도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들에 대해선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국내 대표 가치투자펀드이자 규모가 1조6000억원에 달하는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는 최근 삼성전자 지분을 전량 매도했다.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부사장은 “지배구조는 한국 증시에 가장 큰 디스카운트인데, 결국 워런 버핏처럼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투자로서의 정답 중 하나”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번 삼성전자 지분 전량 매도에 대해 이 부사장의 평소 투자철학을 꼽고 있다.
이 부사장은 실적이 불명확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 중인데, 최근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진행 과정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도 지분 매도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2011년(7.25%), 2012년(14.9%), 2013년(21.44%)에 정점을 찍다가 지난해 4분기부터 매도에 본격 나서기 시작했다. 한국밸류10년펀드는 최근 삼성전자를 전량 매도한 대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롯데쇼핑, 은행주, 한국가스공사 등을 매입했다.
이 부사장은 “향후 2~3년 이후 지배구조 리스크가 없어지면 한국증시 저평가 현상도 많이 해소될 것”이라며 “순환출자를 없애기 위해선 지주사 체제로 가는 것이 정답이며, 오너가 일체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가면서 주주들을 달래는 액션도 많이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