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가 내년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3.5%로 관측했다. 지난 5월 전망치(3.8%)보다 0.3%포인트 낮춘 수치이며, 세계경제 성장률 3.8%보다도 상당히 낮다. 그나마 이 수치도 세계경제 회복과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이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제로 나온 전망이어서 달성 여부가 불투명하다.
KDI는 10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이는 기획재정부의 4.0%, 한국은행 3.9%를 비롯해 한국경제연구원·우리금융연구원·KB금융연구소 등의 예상치(3.7%)보다 낮다. KDI가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은 민간소비와 투자 회복세가 미미한 데다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마저 최근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내수부진 경고음’에 가까운 경제전망=KDI의 이번 경제전망은 우리 경제의 내수부진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내년 민간소비는 올해(1.7%)보다 소폭 확대된 2.3% 정도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 성장률을 하회하는 전망치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부진에서 벗어나고 국내총소득도 증가세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가계소득 비중 감소, 기대수명 연장 등 구조적 요인이 회복세를 제약할 것이라는 것이다.
설비투자도 기업의 저조한 매출액 증가세와 낮은 영업이익률 등으로 인해 올해(4.7%)보다 낮은 3.3% 증가가 예상됐다. 그나마 건설투자는 건설수주 확대, 주택시장 회복 등으로 올해(2.7%)보다 높은 4.7%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수입은 내수가 완만하게나마 회복됨에 따라 올해 -1.2%에서 0.2%로 플러스 전환될 것으로 전망됐다.
◇ 그나마 3.5%도 ‘후한 평가’…달성여부 불투명=KDI는 제시한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에 이례적으로 단서를 달았다. ‘세계 경제가 예상대로 회복되고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이 원활히 실행될 때 가능한 수치’라는 것이다. 바꿔서 말하면 상황에 따라 3.5% 달성도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조동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의 침체 장기화 등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고, 국내적으로도 정부의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수 있다”며 “적지 않은 하방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세계 경제 성장률이 올해(3.3%)와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면 내년 우리 성장률은 3% 초반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유로존경제의 장기침체, 중국경제의 급속한 성장세 둔화, 지정학적위험 확대에 따른 유가급등 등이 하방위험으로 꼽혔다. 대내적으로도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효과가 없으면 내년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가계부채 확대, 세입여건 악화, 기업 실적 부진 등의 부정적인 신호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KDI는 “향후 거시경제정책은 당분간 경기대응적 기조를 유지하되 거시건전성 감독정책 강화를 병행해야 한다”며 “잠재성장률 하락을 완충하기 위한 구조개혁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달갑지 않은’ 경상수지 흑자폭 확대 전망=수치가 개선되는 항목도 있다. KDI는 내년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를 기존의 665억달러에서 890억달러로 늘려 잡았다. 하지만 이는 수출 증가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돈을 쓰지 않는 중·장년층이 늘어나는 인구구조 변화 탓이다. 경상수지 흑자폭이 늘어난 데 대해 조동철 이코노미스트는 “내수가 그만큼 침체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출 증가세는 오히려 내년에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KDI는 세계경제의 점진적인 회복으로 수출 여건이 개선되겠지만 내년 수출이 0.45% 늘어나는 데 그쳐 올해의 1.0% 증가폭에 비해 크게 뒷걸음칠 것으로 관측됐다. 김성태 KDI 연구위원은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에 대한 수출이 감소하고 하루 평균 수출액 증가세도 둔화해 회복이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