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관객의 취향은 권리다-이유리 교수

입력 2014-12-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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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다양성 영화라는 단어가 있다.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뛰어난 저예산 영화를 뜻한다고 되어 있는데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영화 등 육성해야 하는 영화들을 발전시키자는 의미로 거론한 용어가 국어사전에까지 공식화된 것이다. 물론, 주류와 비주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상대적 잣대가 아니냐, 그럼 다양성 영화는 영원히 언더그라운드 개념이냐는 문제의식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 영화는 이렇게 다양한 도전과 실험의 장이다.

다양성 뮤지컬이란 말은 없다. 다양성 논리로 들여다볼 공연도 없다. 흥행한 공연, 흥행하지 못한 공연만 있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흥행 코드가 최선이고 주류다.

그래서 두 뮤지컬 대가의 최근 행보를 개인적으로 지지한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한국 창작뮤지컬의 대부인 윤호진은 ‘보이첵’을 만들었고 한국 뮤지컬의 최고 흥행 연출가 이지나는 ‘더 데빌’을 만들었다. 둘 다 한국 뮤지컬 시장 풍토에서는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다.

둘 다 난해하고 어둡고 주제의식이 강하기로는 문학 역사에 남는 원작을 뮤지컬화했고 둘 다 원작의 색채를 유지했고 실험적인 연극 문법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 뮤지컬시장이라는 골대에 자살골을 힘껏 내찬 것이다. 그게 안타깝다. 대표적인 뮤지컬 전문가들이고 초유의 히트작을 보유한 두 사람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또 공연하는 와중에도 작품의 완성도만큼이나 시장 현실을 고민하고 용기까지 담보로 베팅을 해야 하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흥행 가도를 달려 온 뮤지컬 ‘캣츠’의 원작은 T.S. 엘리어트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다. 1981년 초연 당시, 모든 등장인물이 고양이이고 춤으로만 연기하고 대사 한 마디 없이 노래만 부르는 데다 실험적인 연출가 트레버넌의 젊은 재기가 녹아든 전혀 새로운 뮤지컬에 관객들은 당황했지만 곧 이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냈다. 록 뮤지컬의 교과서로 20여년 장수하고 있는 뮤지컬 ‘렌트’도 초연은 파격적이었다. 7년간 오로지 ‘렌트’ 창작에만 매달렸던 요절 천재 조나단 라슨의 슬픈 자화상이었던 ‘렌트’는 인생은 빌려 쓰는 것일 뿐이고 단지 오늘만이 최고 날이라고 노래한다. ‘렌트’ 속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마약 중독자, 복장 도착자 등 전혀 새로운 인물들이었고 음악도 낯설었다.

그런데 평단과 관객은 열광했다. 낙태, 동성애, 아동학대, 자살 등 첨예한 청소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초연은 안무, 연출, 음악 모든 요소에서 충격적 파격 그 차체였고 그 이전의 뮤지컬은 없다라고까지 흥분한 언론과 평단, 관객이 모두 손을 들어 주었다. 이 음울한 세 작품의 공통점은 기존 뮤지컬 문법을 완전히 깼다는 것과 그럼에도 여전히 롱런 흥행한다는 것이고 뮤지컬이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휩쓸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이첵’과 ‘더 데빌’은 무관심, 또는 양극단적 평가와 갈팡질팡하는 관객들 속에서 적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의 불안감을 견디고 있다. 지금 한국 뮤지컬시장은 유럽 왕실과 브로드웨이 쇼 세계에 빠져 있다. 지금 우리 현실과 전혀 무관한 먼 나라 먼 시대의 판타지와 로맨티시즘이 우리 관객들을 장악하고 있으니 참 희한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우리 한국인 특유의 대중 집단 심리, 스타 마케팅과 싼 로열티로 한국시장을 점령한 유럽 뮤지컬에 한국 관객을 길들인 업계 풍토, 보편적 선과 이분법적 사고에 몰입해 온 성장 교육 관행이 잡탕이 돼 한국 뮤지컬 관객과 한국적 흥행 뮤지컬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관객들도 이제 실험적이고 도전적 용기가 필요하다. 다양하고 색다르게 본인 의지로 본인 취향에 맞는 공연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남다른 평가를 해도 된다. 비싼 관람료와 발품과 에너지를 소비한 관객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며 진정한 관객의 태도다. 결국 이 관객들이 한국 뮤지컬시장을 다양하게 만드는 시장의 주인인 것이다.

<10월 31일 이투데이 지면에 실린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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