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오일전쟁’의 후폭풍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유가 급락으로 상품시장은 물론 산유국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등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유가 약세에 따른 디플레이션 압박이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통화정책에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불발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오는 2015년 1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10% 폭락하며, 배럴당 66달러대로 떨어졌다. 이는 2009년 9월 이후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1월물 북해산 브렌트유도 배럴당 70달러 초반까지 하락하며, 2010년 5월 이후 최저치로 밀렸다. 브렌트유는 지난주에만 13% 하락했다.
주요 산유국이 몰린 걸프지역 증시는 폭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증시는 30일 5.12% 하락하며,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증시는 5% 가까이 빠졌다.
앞서 28일 러시아 증시 RTS지수는 3.2% 하락하며, 2009년 7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루블화 가치는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당 50.4085루블까지 떨어졌다. 이는 사상 최저치다. 브라질 헤알을 비롯해 호주 달러, 노르웨이 크로네 등 주요 산유국 통화 역시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달러 대비 5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자금은 미국 달러로 몰리고 있다. 주요 10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한 블룸버그달러스팟인덱스는 지난 주말 0.6% 상승한 1106.90을 나타냈다. 이는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다.
그렉 앤더슨 뱅크오브몬트리올 외환 투자전략 헤드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브렌트유 기준)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밑으로 빠진다면, 고통스러운 충격이 있을 것”이라며 “유가 약세가 지정학적인 불안으로 이어진다면, 달러가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세를 지속할 경우 달러는 물론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퍼지고 이는 연준의 긴축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실세금리는 지난 주말 큰 폭으로 내렸다. 뉴욕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5bp(1bp=0.01%P) 하락한 2.20%를 기록했다. 장 중에는 지난 10월 22일 이후 최저치인 2.19%까지 빠졌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번 주 11bp 내렸고, 11월에만 14bp 하락했다.
국채와 동일 만기 물가연동채권의 스프레드로,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가늠할 수 있는 BER(break-even rate)는 10년물 기준 1.79%포인트로 낮아졌다. 이는 지난 2011년 10월 이후 최저치다.
시장은 연준이 내년 중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유가 급락으로 금리인상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토마스 로스 미쓰비시UFJ증권 국채 트레이더는 “유가가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퍼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셰일업계의 주가도 휘청거리고 있다. 뉴욕증시에서 브라이틀링에너지가 15% 급락했고, 굿리치페트롤레움은 32% 폭락했다.
세계 최대 정유업체 엑손모빌 역시 4% 넘게 하락했다. 경쟁업체인 셰브런은 5.6% 빠졌다. S&P500 에너지업종지수는 6% 급락했다. 이는 지난 2011년 8월 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이후 최대 낙폭이다.
피터 북바 린제이그룹 수석 애널리스트는 경제전문방송 CNBC에 출연해 “지난 10년간 증시는 유가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면서 “추가적인 유가 약세는 업계는 물론 증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싱크탱크 맨해튼인스티튜트에 따르면, 미국 원유·천연가스업계는 연 3000억~4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에너지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1000만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