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글로벌기업대표자협회(GCCA) 소속 9명의 대표이사는 지난 4일 퇴근 후 우리 술과 천연식초연구회인 ‘향음’을 찾아 한국의 전통 청주의 하나인 석탄향주(惜呑香酒)를 담갔다. 90여개 다국적기업의 한국 혹 아시아지역 대표들로 이뤄진 GCCA는 내달 17일 송년회가 예정돼 있는데 의례적으로 하는 와인보다는 ‘향기가 좋아 차마 삼키기 아쉽다’는 석탄향주로 건배를 하기 위해서다. CEO로서 누구보다 고급 와인과 사케를 많이 접해 본 이들이 오히려 한국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전통술 사랑에 나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에서 11년 근무를 하고 2012년 한국에 돌아와 모멘티브코리아를 이끄는 신동민 대표는 GCCA 손꼽히는 애주가이자 전통주 빚기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협회에 제시한 이다. 신 대표는 “와인 사케를 자주 마시는데 특히 사케는 일본에 오래 살기도 해서 많이 좋아했다”며 “그러나 올해초 향음에서 제대로 된 전통주를 접하고 눈이 딱 떠졌다”고 설명했다. 사케는 좋은 술이지만 밋밋한데 우리네 청주는 건강에 좋은 것은 물론 쓴맛, 신맛, 단맛, 짠맛, 매운맛 등 다양한 맛이 오묘하게 다 들어 있어 반했다는 것이다.
전통주는 맛뿐만 아니라 훌륭한 비즈니스 도구라는 것도 장점이란다. 신 대표는 “외국인들도 비즈니스 얘기는 회의실에서 하지 나와서는 절대 안한다”며 “직접 빚은 술을 접대 시 가지고 가면 그 자리가 훨씬 풍성해져 사업을 더 원활하게 이끌 수 있다”고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정삼 젠하이저 한국총괄 이사는 “얼마전 독일 손님이 한국에 왔을 때 유럽술로 대접해 부끄러웠다. 술에 대해서는 브랜드밖에 얘기할 게 없었다”며 “그러나 앞으로 직접 만든 전통술을 한국 문화와 엮어서 스토리텔링을 해 나간다면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전통술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재희 포드코리아 사장 겸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은 “오늘 행사에서 주정에 물을 탄 국적 불명의 소주와 감미료 섞인 막걸리가 우리 술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렸다는 얘기를 새로이 알게 됐다”며 “전통주가 와인 사케처럼 비즈니스상에서 애음되기 위해서는 종류와 심연을 더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민 대표는 “우리나라는 맥주에 위스키 소주 등을 섞은 정체불명의 폭탄주 문화를 우리네 음주 문화의 전부인 것처럼 얘기해 아쉽다”며 “올 송년회에는 맛도 챙기고 농민들 시름도 덜 겸 전통주를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