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세 가지 코스 중 1구간을 선택한 지긋한 연세에 당차 보이는 마을 어르신의 안내를 받으며 숲길을 걸었다. 산에 오르기 전 지나간 마을 앞길에는 담장 밖으로 탐스럽게 늘어진 단감에 맺힌 이슬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산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내 솔향기가 코 끝으로 가득 밀려왔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스르륵 스르륵 짝을 찾는 합창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맑아지면서 왠지 힘이 샘솟는 듯했다.
두천1리에서 소광2리까지 이어지는 13.5㎞ 길이의 1구간은 얼마 전 비가 내려서 젖은 낙엽이 푹신푹신해 걷기에 딱 좋았다. 계곡은 수량이 풍부했고 군데군데 앙증맞은 폭포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러다 마주친 옹달샘 물은 바라보는 순간 얼마나 투명한지 눈이 시원하고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발원한 계곡물은 흘러흘러 경북 울진 불영계곡을 거쳐 연어가 회귀한다는 왕피천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내 안의 못된 생각들도 이 계곡물 따라 멀리멀리 흘려보내 달라고 가만히 기도했다.
3시간 정도 오르니 조금 평평한 곳이 나왔다. 여기서 마을사람들이 준비한 산채비빔밥을 게눈 감추듯 맛있게 한 그릇 비우고 다시 숲길로 향했다. 오후 3시 반쯤 되어 목적지인 소광2리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6시간 반 정도가 지나 있었지만 가다 쉬다 숲해설가 어르신의 설명을 들은 시간을 빼면 실제 걸은 거리는 4시간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려와서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정자에 올라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켰다. 구름 한 조각 여유롭게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보니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을 만큼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