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당시 리덩후이 부총통 이후 일본을 찾은 가장 지위가 높은 대만 관리인 라이칭더 부총통은 전날 아베 전 총리 자택을 찾아 아키에 여사를 위로하기도 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라이칭더 부총통 방문에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을 의식해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어디까지나 사적으로 방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크라크 차관이 대만을 방문한 표면적 이유는 19일 진행되는 고(故)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의 고별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크라크 차관은 방문 동안 차이잉원 총통, 쑤정창 행정원장 등 대만 고위 인사들을 만나 경제, 기술, 에너지 분야를 포함한 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란 분석이다.
무기 판매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앞서...
‘대만 민주주의의 아버지’ 리덩후이 전 총통이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양국론’을 주장했던 리 전 총통의 사망에 중국 정부는 “대만 독립은 절대 안된다”며 미리 경계하고 나섰다.
30일(현지시간) 대만 영자매체 타이완뉴스는 리덩후이 전 총통이 이날 오전 7시 24분 타이베이 룽민쭝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2월부터 폐렴 증세를 보여 입원...
리덩후이(李登輝, 1923.1.15~)는 타이완 본토 출신 최초의 총통이다. 1949년 장제스의 중국 공산당이 공산군에 패해 타이완으로 건너온 이후 총통 자리는 줄곧 대륙 출신이 맡았다.
타이완 대학 교수이던 그는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의 눈에 들어 1971년 국민당에 입당, 정계에 입문한다. 대만 본토 출신이면서 일본 교토(京都)대와 미국 아이오와대 유학도 한 데다...
1995년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총통이 코넬대학 동문회 참석을 빌미로 미국을 방문하면서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위협을 감행하고 이에 대응해 미국 역시 항공모함을 대만해협으로 이동시키는 극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오히려 이러한 최악의 경험이 교훈이 되어 이후 미·중 양국은 ‘대만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를 위기로 몰고 가는 데 매우 신중한...
1990년대 리덩후이 전 총통이 대중국 정책 자문위원으로 처음 그를 발탁했다. 이후 차이잉원은 2000년 천수이볜 정부 시절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장관급)과 입법위원(국회의원), 행정원 부원장(부총리)을 차례로 거친 뒤 민진당 주석에 올랐다.
민진당 관계자들은 차이잉원이 강력한 하향식 리더십이지만 여러 곳에서 의견을 받아들여 사람을 움직이는 스타일이며...
리덩후이 대만 전 총통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오쩌둥보다 야심이 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고 9일(현지시간) 대만 언론들이 보도했다.
리 전 총통은 전날 대만 타이베이 소재 둥우대학교에서 가진 강연에서 “시 주석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도전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마오쩌둥보다 야심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시 주석은 국제 이슈에서 더 많은 힘과...